ただ...
by rain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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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자들의 도시
독이 든 성배

이겨도 지고 져도 진다

원작이 있다는 싸움이 이렇다

최근 원작 소설을 읽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작가의 시점이 냉정하고 깊이가 있었다
특히 따옴표 없이 말과 말의 연결은 신선하면서도 한번 더 곱씹어야 했기에-
  시간도 오래걸리고 더 없이 진지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보니 무서우리만큼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이 눈에 그려졌다
 
특별히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읽는 동안 이렇지는 않을거라는 희망을 키워나가기엔-

   눈먼 그들의 현실과 진짜 현실이 그리 다르지는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에 대한 기대나 믿음이 부족한 나라서-
 성선 보다는 성악을 믿는 나라서.

    모두 눈이 보이는 지금 여기의 우리와 책속의 세상과 다른 그림을 찾는 일이라면-
 아무리 천재라도 증명해내기 힘들 고난이도 명제로 여겨졌다


아직은 살만해는 너무 비겁한 말이야. 

분명 지금도 나쁘지만- 아직은 참을만해.
 그런 의미니까.

뉴스를 좀 보라지

세상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곳인가?

사실은 지금이라서
혹은
여기라서

-라기에는

우리의 본질이
   여기 나오는 인간들의 군상들과 크게는 다르지 않아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눈이 멀었다는 핑계로 누군가는 악마가 되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아니라며-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긍지를 손에 쥐고 놓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선택도 없이 살아남기에 급급한 이도 있었다.
 우리들이 그렇다. 우리들이다.


긍지나 존엄, 자존 같은 한 조각의 천으로는 자신의 알몸을 전부 가릴 수가 없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테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있어야만 하는것.
  그때라면 꼭 믿고 싶고 기대고 싶은 그 이름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사람을 알몸으로 만든다.

 진정한 자기자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자신의 목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순간.

가장 필요한 것들이 가장 나약해지는 순간.



우리는 사회속의 자신의 모습을 전부 혹은 일정 부분 숨기고 다닌다
    가면을 쓴다

사회라는 선의 안쪽에서라면
 우리는 우리의 속살을 보여줄 필요도 의무도 없다.

세상은 너무나 바쁘고 우리를 향한 관심은 선이 아닌 점이기에-
 우리가 우리 전부를 보여줄 시간이란 존재할 수가 없고.
  더해서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가지 옷과 가면을 쓰고 내가 내가 아닌 상태로 거리를 활보한다.
  내 가방이 내 품격이고
  내 직업이 내 이름이고
 그렇게 진짜 나보다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비극은-
 생각만큼 세상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일인칭이지만-
  타인에게는 타인일 뿐.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우리를 그대로 이해해줄 누군가가 고프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하지만 그런 때라면 긍지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사람 비스무레하게 평가해 줄 사람이 있다면.
   뻔한 텍스트라고 해도 해석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말이다.
  
 박수를 쳐줘야 떠날거 아닌가?

하지만 볼 수 없다-라는 불평등은 시작되고.
  전파의 가파른 곡선 그 최고점에 이르러 이 땅위에는 진정한 평등.
 즉 모두 빼기 한명의 눈이 전부 멀게 된 순간

적어도 모두 눈이 멀었다고 믿게 된 순간.

드디어 사람들은 나신을.
   속살을 꺼내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자신이 그것을 볼 수 없다는 거다.

눈가리고 아웅한다거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고
방울 소리에 내 귀를 막아버리는 것은

틀린말이 아니다

내가 볼 수 없다면-
 세상은 나를 볼 수 있다해도..

세상은 없다.

백색 공포.
하얀 질병에 눈이 멀었고.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세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진정으로 자기 자신과의 가장 진지하고 진실한 대화가 시작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가면을. 껍질을 벗어야 했다.



나는 누구인가.
 
 괴물? 아니면 인간?


볼수 없다.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누구도 나를.


눈먼 이들을 수용하는 작은 세상의 눈먼자들.
 그들에게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눈이 먼 세계의 룰은 단순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악마가 되고 괴물이 되고 짐슴이 됐다.

 빼았는 쪽이 있으면 빼앗기고 희생하는 쪽이 있기 마련.

하나씩 옷을 벗어가듯.
 빼앗기는 쪽의 사람들은 하나 하나 포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악당들이 의례 그렇듯.

   여성들의 희생은 눈먼 자들이 갇힌 작은 세계의 종말을 부른다.
 
 자유라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무질서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상대가 사람인지 아닌지 그 무엇인지 어떻게 판단할까?

눈먼 세상에서는 가장 의미없는 말-

사람다움.

신경 쓸 필요 없는 것들을 신경씀으로써
   사람다울 수 있다.
  
비록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이름이지만
   
 빼앗긴 것과 버린 것은 다르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눈을 떳을때.

아주 잠시라해도
 짐승이 되었었음을 잊을 수 있을까..

다행인건 모두 빼앗긴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어금니 하나.
  사자가 사자로 있을 수 있는건 사자의 갈기가 아니라 어금니가 아닌가.
   먹이를 물어 뜯을 수 있는 가장 강한 이빨.
  
그렇기에 연명을 위해 많은 것을 내려 놓았지만-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닌 희생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전쟁을 선택하고야 마는 마지막 긍지라는 이름도 있었다.

짐승의 짐승이 되지 않았기에.

 눈먼 세상위에서 끝까지 눈이 멀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그 길에 마치 구도자처럼

   변하가는 세상 위에 홀로 볼 수있는 한 여자의 고행이 있었다.
 그녀는 용서하고 포용하고 지키고 살리며 죽인다.

마치 점점 악으로 기울어가는 우리의 세상을 지켜보는 창조주의 모습이 얼핏 비친다.

 자신을 닮은 피조물들이 망가져 가는 모습.

빛으로 가득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오히려 어둠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빛이었다.

세상이 암흑이 되지않기 위한 작은 촛불.

  빛의 세상에서 모든 어둠을 지켜본 그녀는 모두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눈이 멀었다.
 세상의 어둠을 혼자 갈무리 하려는 듯 말이다.


그렇게 결말보다는
 결말에 이르는 길이 참 흥미로웠던 이야기.



  선원작 후영화라 그런지-

  상상이라는 색을 칠할 여백이 부족했다.
 
 자신의 상상과 영상의 충돌과 부조화에 필연적으로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몇가지만 언급하자면-

 일단 줄리안 무어
   연기력으로 이 누나한테 안좋은 말을 하기에는 내공이 너무 단단하다.

 다른 어떤 인물에 비하면 가장 비정상적인-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인간.

   볼 수 있다는 축복으로 저주받은 길을 걷는 의사의 아내 역할.

 그녀의 시선은 우리와 함께-
   같은 지옥을 걸었다.


 보이지 않는 눈먼자들의 연기들 보다도
  눈이 보이는 그녀의 연기가 더 돋보이는 것은 인물자체의 힘도 있겠지만-

 그녀라는 붓을 빌어 칠했기 때문도 있다. 

 대체 가능한 많은 인물 중에 그녀는 그게 안되는 색이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부러지기 딱 좋게 말라서 약간 안타깝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면의 강인함이 있다.

 외유내강.

딱봐서 강해보이지는 않는데
  현명함이나 지혜에서 출발하는 강함이라고 해야 하나 지적인 느낌 때문인지 그렇다.

  여기저기 장르 안가리는 꾸준함도 있고
 뭐건 맡은 바는 충실하게 마무리 해주는 연기력도 있어 호감인 누나.

아슬아슬하게 모두를 이끄는 강함과 어둠을 목격하며 보이는 연약함이라는 양면을 잘 지켜낸다.
 돋보일 수 밖에 없는 역이지만 그녀라서 돋보였다.
 



헐크 되기 전의 소시민스러운 러팔로
  그의 넘치지 않음. 과하지 않음이 캐릭터와 섞여서-
   
 타인들이 정신적으로 의존하지만 본인도 의존적이고 연약한 안과 의사.
  그 탄산이 좀 빠진듯한 밋밋함을 나름 잘 커버하는데.

 그닥 매력을 못 느낀 인물이기도 하지만
 실재도 좀 그렇다. 그 소시민스러움 탓인지..

   
선글라스 낀 여자는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던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고-
 그래서 패스.


마지막으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거다.
 수면의 과학의 순둥이가 악당1. 제일 큰 악당. 두목 악당역이라 너 되게 낯설다.

 -였지만.

순한 인상과 악역은 맞아 떨어지기만 하면 더 강한 시너지가 있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총이 아니라 악에 취해서 그가 보여주는 날카로운 광기가 그의 무기였다.

  의사의 아내를 타락시키는 살인이라는 악과
  사람들로 하여금 단결하고 희생하고 죽음을 향해 한걸음 내딛게 만드는 선을 동시에 낳는 불씨.

상황이 만드는 필연적이지만 너절하고 뻔한 악으로서
  길지 않은 호흡의 출연이지만 나쁜놈으로서 할당량은 다 채운듯 보인다.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원작을 등에 업고 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등뒤의 사람이 앞사람을 안고 간다고 생각할 것 같다. 

 원작 없이는 괜찮을 법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쉽다.
   
 

원작에 이끌여서 이도저도 아닌 그냥 흔한 영화 하나로 남아버린 것 같다.

 
단순히 소설도 남에게 추천하고 싶은 좋은 작품이지만

 영화와 소설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같은편인 사람이라면-

 망설임 없이 영화보다는 소설을 추천하겠다.





blindness



by rainmaker | 2014/10/30 02:03 | 영화처럼 살고 싶었어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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